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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싸움놀이의 유래

    국가무형문화재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

    복합어로 두 개의 고가 서로 맞붙어서 싸움을 한다는 의미이며,
    여기서 '고'는 한 가닥을 길게 빼서 둥그런 모양을 만들어 맺는 것을 말한다.
    고싸움놀이는 마을사람들이 남자를 상징하는 동부와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의 두 패로 갈라져서 싸움을 벌이는데 여자를 상징하는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고싸움놀이를 통해 마을사람들은 그 해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의 협동과 단결심을 앙양하고 악착같은 패기와 강한 투지를 키우도록 하였다.

    고싸움놀이는 쌀농사 중심의 전라남도 등에서 널리 행해졌던 줄다리기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정월 세시 민속놀이로, 삼한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말까지 천오백년 이상 칠석 옻돌마을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여느 민속놀이와 마찬가지로 금기시 되고 궁핍한 농촌경제 사정으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이후 서서히 되살아나 소규모의 마을놀이로 행해지기는 하였으나, 체계적인 고싸움놀이의 전통은 복원되지 못하였다.

    마을 아이들 사이의 소규모 세시 놀이형태로 이루어지던 고싸움놀이는 1960년대 중반부터 마을의 뜻있는 청년들이 재현에 관심을 가지며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마을 유지들과 마을출신 향우들의 의뢰와 헌신적 협조를 받은 민속학계의 도움으로 1967년부터 학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 1968년 전통 민속놀이로 복원·재현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열성적인 복원 노력에 힘을 얻어, 1969년 2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참여한 제1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여 전국에 고싸움놀이의 우수성과 가치를 널리 알리게 되었다.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의 대통령상 수상으로 고싸움놀이의 문화재적 가치가 알려지면서 정부는 엄격한 조사와 심의를 거쳐 고싸움놀이를 1970년 7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하여 국가적 차원의 보존과 전승, 그리고 문화자원 개발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이를 주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고싸움놀이보존회가 발족하였으며, 문화기능의 전수와 교육을 위해 인간문화재와 기능보유자가 지정되고 전수관이 1987년 완공되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고싸움놀이는 대외적인 전국의 각종 문화행사에서 시연되어 문화재적 가치를 보여 주었으며, 특히 1986년 아시아 경기대회와 1988년 올림픽에서 개막식 후 공개 행사로 시연 되어 세계인에게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과 강한 패기를 널리 알려 세계적인 민속놀이로 자리 잡아 왔다.

    고싸움놀이는 1983년부터 고싸움놀이 축제가 매년 개최 되면서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지역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고싸움놀이 축제는 고싸움놀이의 발상지인 칠석 옻돌마을에서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고싸움놀이 축제는 전야제 행사로 쥐불놀이, 당산제, 농악이 열린 후, 정월대보름날에는 풍물놀이와 고싸움놀이가 시연되고, 줄다리기, 연날리기, 널뛰기, 그네뛰기 등 전통 세시민속놀이가 함께 이루어져 관광객들에게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기회를 제공한다.